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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

노인영 논설위원  |  nohproble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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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09  09:30:35  |  조회수 :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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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 폴록의 <No 5(1948)>입니다. 1억4천만 달러(약 1,640억 원), 회화 역사상 개인 작품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입니다. 뭐가 그렇게 비싸냐고요. 우리 대중들은 전혀 모릅니다. 그가 영감이 떠오르기까지 꼼짝없이 기다린 수개월의 시간을.

르누아르가 이야기합니다. “드로잉을 완성하는 데 5분이 걸렸지만, 이에 다다르기까지 60년이 걸렸다.”

미국의 미술이 유럽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세계를 당당하게 인정받은 인물, 그가 잭슨 폴록입니다. 미술계의 ‘제임스 딘’이죠.

그는 “그림은 왜 캔버스를 앞에 두고 붓으로 그려야 하냐?”고 질문했어요. 그리곤 이젤이 아닌 바닥에 캔버스를 놓고 가정용 페인트를 뚝뚝 떨어뜨리며 그렸죠. ‘액션 페인팅’입니다.

즉흥적 감각이 매우 중요해요. 본능적인 에너지와 불확실한 우연을 통해 창출되는 기하학적 추상입니다. “그림 작업에 몰두할 때면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른다.” 폴록이 한 말입니다.

그림은 그 자신의 삶을 갖는다고 하면서 “나는 그림이 그럴 수(자신의 삶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할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무의식적으로 말이죠.

유럽식 의미의 ‘추상’은 실재(자연)로부터 공통된 상(象)을 추출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몬드리안 때 설명했지요. 흐흐.

이런 자연추상주의를 주창한 한스 호프만이 잭슨 폴록에게 이야기하죠. 추상은 자연에서 나온다고. 그러자 폴락은 이렇게 응답합니다. “내가 자연이다.”

이 말은 미국 추상주의를 상징하는 말로 매우 중요합니다. 호프만은 무의식적 '자동기술법 autonomism'을 회의적으로 바라보았어요. 무의식도 결국은 현실의 의식과 연관되어 있다고 본 거죠.

그러나 폴록과 초현실주의자들의 자동기술법은 별개의 무의식 세계에서 만들어지는, 즉 자연 발생적이라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폴록은 자신을 ‘자연’이라고 하는 것이고요.


   

▲ 1950년 드리핑(dripping) 기법으로 <가을의 리듬>을 그리는 잭슨 폴록. 한스 나무트의 이 흑백 사진 덕분으로 폴록은 대중에게 신비로운 이미지를 주었고,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한다.


어쨌든 그는 이렇게 새로운 미술 사조, ‘추상표현주의’를 엽니다. 형식의 ‘추상’과 내용에서 ‘표현주의’를 합친 말입니다. 그리고 표현주의에서 ‘표현’이란, 인간 내면의 표현을 말합니다.

결론적으로 추상표현주의는 ‘감정과 감각을 무의식에 의존하여 자유롭게 표현하는 미술양식’이라고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사실 이런 구분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본질이 아니잖아요? 그림을 이해하기 위한 보조 기능일 뿐입니다. 아니, 어떤 면에서 ‘추상’은 아주 쉽다고 생각해도 돼요.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 관람자가 보고 느낀 대로의 추상이거든요.

그런데 잘 나가던 폴록이 흔들립니다. 한스 나무트가 다큐멘터리 단편영화 촬영을 제의했는데, 여기에 출현하면서 리듬이 깨집니다. 그림 그리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담게 되면서 생긴 현상이지요. 좀 전에 말한 무의식적 자연성을 상실한 거예요.

결국, 끊었던 술을 다시 입에 대고, 자살에 가까운 죽음을 맞이합니다. 1956년 여름, 45세에 300km가 넘는 속도로 운전하다가...

그런데 그림이 대관절 뭔데, 화가들을 이토록 번민하게 하는 걸까요? 예술이란 어떤 목적을 위해 동원되는 수단일까요, 아니면 인간의 본능적 욕구일까요?

추상, 그 단순성은 0과 1의 디지털 시대에 당연히 예고되었던 미술 형식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현대미술은 추상에서 더 나아가, ‘미술이 무엇이냐’는 본질적인 질문을 하게 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소개할 때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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