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깨나 지는 정신은 이처럼 더 없이 무거운 짐 모두를 마다하지 않고 짊어진다. 그리고는 마치 짐을 가득 싣고 사막을 향해 서둘러 달리는
낙타처럼 그 자신의 사막으로 서둘러 달려간다. 그러나 외롭기 짝이 없는 저 사막에서 두 번째 변화가 일어난다. 여기에서 낙타는 사자로 변신하는
것이다. 사자가 된 낙타는 이제 자유를 쟁취하여 그 자신이 사막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 -《짜라투스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최근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노래를 듣다가 이 노래가 갖는 파워풀한 힘과 예상치 못했던 사유의 깊이에 놀라고
말았다. 양인자라는 작가의 시를 조용필이 가사로 붙여 노래를 만들었는데 작가의 글도 글이지만 그걸 알아본 조용필도 역시 대단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인자 님은 작곡가 김희갑 님의 부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작사가라기보다 원래 소설가다. 《네가 있었던 강가의 새벽》,《돌아온
미소》,《하꼬네에서 온 편지》 등 소설이 있으며 한때 가수 김국환의 노래로 장안의 화제를 모았던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으로 비 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지.....”하는 ‘타타타’ 노래를 작사하기도
했다. 임주리의 ‘립스틱 짙게 바르고’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 등과 방송극 ‘제3교실’ 같은 유명 드라마의 극본을 쓰기도 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양인자 님이 소설이나 드라마 등 장편의 글만 쓰던 습관 때문에 짧은 단문형식의 가사는 쓰기가 좀 그렇다니까 김희갑 님이
“길이는 얼마든지 좋으니까 마음껏 쓰라”고 하여 나온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아무튼 필자 역시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란 노래를 익히 알고 있었으나
그 가사의 치열함과 깊은 맛을 이번에야 느끼게 된 것이다.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의
울부짖음은 세상을 향한 자기 존재의 증명이다.
그것은 니체의 ‘사자’와 다름 없다. 사자는 -사회가 부과한 의무를 지긴 하지만 불합리한 것에는 저항하면서 옳고 그름을 자신이 주체적으로
파악하여 사회를 변화시키며 능동적인 삶을 사는 주체적인 인간- 즉, 이성이 최고로 발달한 자아가 강한 소수의 인간에 대한 은유다.
이 은유는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한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처럼
타올라야지“라는 연속된 가사로 그가 ‘니체의 사자’의 또 다른 분신임을 증명한다.
사자는 비굴하지 않다. 사자는 절대로 짐을 지지 않는다. 사자는 혁명가다. 자유의지를 세상에 울부짖을 만큼 강력한 의지의 소유자다. 사자가
자신의 흔적을 지상 곳곳에 남기며 인간으로부터 독립하고 밀림의 왕이 되었듯 킬로만자로의 표범 역시 킬로만자로의 왕이 되었다.
그리하여 킬로만자로의 표범은 니체가 《아침놀 서문》에서 “세계가 생겨난 이래로 지금껏, 스스로에 대한 비평을 허용하는 권위는 존재하지
않았다”라고 했던 말을 웅변하며 조용필의 혼을 실은 목소리로 되살아났다.
라이프니치의 ‘창이 없는 모나드’는 고독이다. 우리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소통 가능한 창과 같은 통로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킬리만자로의 표범 또한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이 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냐”고 소리치며 킬로만자로 능선 어디에선가 절대적 고독을 파묻으며 혼자라도 외롭지 않다고 소리친다.
그리하여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아는 이 없으면 또 어떠리?”하고
반문하면서 자신의 사유를 전개하고 변화에 대처하려 갈기를 세우고 세상에 일갈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갈은 바로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되지 않고,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고, 용감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知者不惑, 仁者不憂,
勇者不懼/지자불혹, 인자불우, 용자불구)"는 공자의 말씀과 맞닿는다.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으려 하는 존재다. 그럼으로 해서 고독에서 벗어나려 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도
자신을 사랑해주기 바란다. 파스칼이 더럽고 추악하고 잔인하고 변덕스러운 인간의 모습을 들추어내며 이런 인간을 어찌 사랑할 수 있느냐고 했지만
우리는 지성으로 무엇인가 알아서 사랑하는 존재가 아니라 심정으로 무언가를 사랑해서 알아가는 존재다.
공자의 사상 핵심은 인(仁)이다. 인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일과 다름 없다. 그것은 세상 무엇보다 먼저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며 서로 존중하고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킬리만자로 표범의 몸부림이나 아우성은 바로 자신을 사랑해 달라는 처절한 웅변이자 존재에 대한 피끓는 증명이다.
공자는 제자 자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군자다운 선비가 되지 소인다운 선비가 되지 말아라(女爲君子儒, 無爲小人儒/여위군자유, 무위소인유)".
양인자 님은 킬리만자로 표범을 통해 ‘군자다운 군자’의 모습을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자! 이제 가사를 음미해 보자.
(독백)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자고 나면 위대해지고 자고 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이 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흐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노래)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한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처럼 타올라야지
묻지 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아는 이 없으면 또 어떠리
(독백)
살아가는 일이 허전하고 등이 시릴 때
그것을 위안해줄 아무것도 없는 보잘 것 없는 세상을
너는 귀뚜라미를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귀뚜라미를 사랑한다
너는 라일락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라일락을 사랑한다
너는 밤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밤을 사랑한다
그리고 또 나는 사랑 한다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 있는 내 청춘에 건배
(노래)
사랑이 외로운 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지
모든 것을 거니까 외로운 거야
사랑도 이상도 모두를 요구하는 것
모두를 건다는 건 외로운 거야
사랑이란 이별이 보이는 가슴 아픈 정열
정열의 마지막엔 무엇이 있나
모두를 잃어도 사랑은 후회 않는 것 그래야 사랑했다 할수 있겠지
(독백)
아무리 깊은 밤일지라도
한가닥 불빛으로 나는 남으리
메마르고 타버린 땅일지라도
한줄기 맑은 물소리로 나는 남으리
거센 폭풍우 초목을 휩쓸어도
꺾이지 않는 한 그루 나무되리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을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다
(노래)
구름인가 눈인가 저 높은 곳 킬리만자로
오늘도 나는 가리 배낭을 메고 산에서 만나는 고독과 악수하며
그대로 산이 된들 또 어떠리
라.. 라.. 라..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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