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와 칸트
춘추시대 말[馬]을 다루는데 달인이었던 왕양과 진나라 대부 조양자 사이의 이야기다. 마차몰기 기술을 배운 조양자가 어느 정도 숙련되자
왕양에게 대결을 청했다. 그러나 조양자는 매번 왕양에게 졌다. 말을 바꿔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조양자는 의심이 생긴다. 왕양이 비책을 모두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왕양이 말한다.
"마차경주에서 달리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말입니다. 말이 경주를 주도하고, 사람은 그저 말이 잘 달릴 수 있도록 방향만 잡아주고 방해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런데 대인께서는 반대로 하셨으니, 어찌 시합에서 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세상을 볼 때 자기 입장에서 본다. 여기에는 자기가 살아오면서 본 그리고 공부했던 모든 선(先)지식들이 들어있다.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이 바로 그런 것이다, 여기다 억측을 하거나 예단을 하거나 섣부른 지식으로 판단한다. 이러다 보니 정확하고 분명한 판단이 어렵다.
조양자가 말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 것은 무의, 무필, 무고, 무아의 자세가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공자는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지 않았고,
틀림없이 그렇다고 단언하지 않았고, 고집 부리지 않았으며 아집을 부리는 일이 없었다(子絶四: 毋意, 毋必, 毋固, 毋我/자절사: 무의, 무필,
무고, 무아)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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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설(왼쪽)과 칸트, 두사람은 인간이
사물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순수이성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자는 2500년 전 이미 무의, 무필, 무고, 무아의 사상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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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는 『순수이성 비판』에서 우리의 인식은 경험을 통해서는 얻을 수 없는 필연성과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고 봤다. 세계(사물)에 대한 경험을
통해 얻어진 선입견이나 고정관념 같은 생각이 세상을 잘못 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험 이전의 순수한 의식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은 세계를 인식하고 판단할 때 우선 감각기관을 통해 지각하게 된다. 그런 다음 자신에게 지각된 것을 12카데고리에 넣어
인식하게 된다. 전자를 감성작용 후자를 오성(悟性)작용 이라 한다. 오성은 판단과 관련되고, 판단은 분량, 성질, 관계, 양상에 따라 분류할 수
있는데, 각각에 3가지 종류가 있다. 그래서 모두 12가지의 판단이 가능하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분량에 따른 판단의 종류: 전칭, 특칭, 단칭판단
성질에 따른 판단의 종류: 긍정, 부정, 무한판단
관계에 따른 판단의 종류: 정언, 가언, 선언판단
양상에 따른 판단의 종류: 개연, 실연, 필연판단
인간은 이 두 가지를 종합하여 올바른 것인지 그릇된 것인지 이성적으로 판단하는데 이게 이성작용이다.
그런데 이 12가지 카테고리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그 이유는 주관성을 띄기 때문이다. 이성 역시 주관적이고 개인의 이익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이런 이성으로 세계를 인식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상식적이라고 볼 수 없다. 이래서 순수이성으로서의 비판이 필요한데 인간인 이상 순수이성이
존재하기 힘들다.
그래서 칸트는 인간은 감각기관을 거쳐 지각한 것을 12 카테고리의 이성을 통해 인식하고 판단할 수 있을 뿐이지 실제로 존재하는
물자체(物自體/Ding-an-sich)에 대해서는 무지할 수밖에 없다고 결론짓는다.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이미 선천적으로 구성된 것이고, 감성의 선천적 형식을 거치지 않은, 감성을 촉발하게 하는 사물 자체는 인식할 수
없다. 그러한 감성을 촉발하게 하는 사물 자체를 칸트는 물자체라고 부른다.
인간은 감각기관을 거쳐 지각한 것을 12 카테고리의 인식틀과 이성을 통해 인식하고 판단할 수 있을 뿐이지 실제 존재하는 물자체는 제대로
인식판단하지 못한다. 인간은 태어나서 사망할 때까지 감각기관, 12 카테고리의 인식틀, 이성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사물을 인식할 수 있을 뿐이므로
물자체는 절대로 인식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살 수 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사물을 왜곡되게 잘못 인식하고 산다는 것이다.
아무튼 우리가 바라보는 사물은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사물이 아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지만 어제의 그 산이거나 아까 봤던 물이
아니다. 우리가 현재의 마음으로 인식한다하더라도 과거 그 사물에 대해 알고 있던 경험이 추론하여 화장을 하고 우리에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다음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이성은 자연이 시키는 대로 조종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 자신이 스스로의 기획에 따라 생산하는 것만 통찰하고 자신의 판단의 원리들을 가지고
항구적 법칙에 따라 전진하여 자연을 강요하여 이성 자신의 물음에 대답하도록 만든다.”
사물에 대한 이전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인식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그릇된 판단을 낳게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물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이래서 후설① 같은 철학자는 불가피하게 개별적 사물 및 이것의 세계지평에 관한 의식을 판단 중지하고 환원하자는 판단중지
및 환원의 보편성을 요청하게 된다.
“심리학자는 당연히 판단 중지 및 환원을 자기 자신에서부터 그리고 우선은 자기 자신에 대해 수행해야만 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원본적
자기경험 및 자신에게 원본적으로 고유한 세계의식으로부터 출발해야만 한다. 즉 그가 인간에게서 인정한 모든 것을, 곧 좋은 사람이라거나 죄인이라는
것, 그리고 그 밖의 어떻다고 추정되는 바의 모든 것을, 그가 그때마다 인정해주는 그런 인간으로 자기 자신을 파악하는 자기통각으로부터 출발해야만
한다. 심리학자가 자기 자신에 대해 무관심한 관찰자로 되면서 이 모든 것은 함께 작용하는 모든 타당성을 상실한다.”(후설의 『유럽학문의
위기』중에서)
사물을 이해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직접 경험이고, 다른 하나는 간접경험인데 이는 책을 보거나 사물을 유추해서 이해하는
것이다. 물론 직접 경험이 진짜 경험이다. 직접경험은 화장하지 않는 순수의식이어야만 하는데, 순수의식으로 돌아가려면 경험을 없애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어머니 자궁에 있을 때부터 이미 유전자를 통해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후설은 형상적 환원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경험적 사실에서 우연적 사실성을 없애고 본질의 세계에 이르자는 것이다.
즉 화장하지 않는 원형 그대로 경험의식 이전의 의식으로 인식하는 선험적 환원(순수의식)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아무튼 인간은 눈이나 귀로 사물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 따라서 올바른 인식을 위해서는 공자의 말씀처럼 미혹하지 않아야
한다(知者不惑).
공자는 “많이 듣고 나서 의심스러운 것은 일단 보류하고 그 나머지만 신중하게 이야기하면 실수가 적을 것이고, 많이 보고 나서 미심쩍은 것은
일단 보류하고 그 나머지만 신중하게 실행하면 후회가 적을 것이다(多聞闕疑, 愼言其餘, 則寡尤; 多見闕殆, 愼行其餘, 則寡悔. 言寡尤, 行寡悔,
祿在其中矣)"고 했다. 칸트보다 2200여년이나 앞선 통찰력이다.
여기에서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은 이렇다. 세상일은 무턱대고 노력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다보면 스스로 그러하게(自然)
이루어지는 법이다. 한마디로 '무위이치(無爲而治)'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억지로 애쓰지 않고도 천하를 태평하게 잘 다스린 사람은 아마도 순임금이리라! 그는 무엇을 했는가? 몸가짐을 공손하게
하고 남쪽을 향하여 똑바로 앉아 있었을 뿐이다(無爲而治者, 其舜也與! 夫何爲哉? 恭己正南面而已矣/무위이치자, 기순야여! 부하위재?
공기정남면이이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덕으로 정치를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마치 북극성이 제자리에 가만히 있는데 뭇별들이 그것을 에워싸고 도는 것과
같다(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而衆星共之/위정이덕, 비여북신, 거기소이중성공지)."
----주해
①1859년 오스트리아 프로스니츠 출생. 1883년 빈 대학에서 변분계산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 1900~1901년에 현상학의
초석이 된 『논리연구』 출간. 1901~16년 괴팅겐 대학 교수. 1916~1928년 프라이부르크 대학 정교수. 유대인으로 국가
사회주의자들로부터 핍박을 받았다. 1938년 4월 27일, 79세의 나이로 타계.
『논리연구』,『엄밀학으로서의 철학』,『이념들I』,『내적시간의식의 현상학』(1928),『형식 논리학과 초월론적
논리학』(1929),『데카르트적 성찰』(1929),『유럽학문의 위기와 초월론적 현상학』(I부와 II부만 출간됨, 1936)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