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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행복신문 안경숙 시인의 절창이 알알이 박힌 혜화동 성곽길

만청 주장환 2017. 2. 18.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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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숙 시인의 절창이 알알이 박힌 혜화동 성곽길

주장환  |  jangwhana@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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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2.14  10:3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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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행복학교 2월 모임의 첫 기착지인 혜화동은 중장년층의 목욕탕과도 같은 곳이다. 사람들은 매일 그곳에 와서 묵은 때를 벗기고 키득거리는가 하면 한쪽 구석에서 남몰래 눈물을 찍어내곤 했다. 시인 조병화는 그곳을 ‘나의 터미널’이라고 말하며 혜화와의 추억을 되새김질하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성균관 유생이 모여 살던 반촌이기도 했으니 조선조와 현대 사이를 오가는 터미널일 것 같기도 하다.


   
▲ 헤화 성곽에서 바라본 혜화-성북동 일대. 시인묵객들은 이곳을 버스 터미널처럼 오가며 세월을 보냈다.

헤화(惠化) 은혜를 베풀어 교화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게 무슨 꽃 이름인 듯 생각한다. ‘지나온 과거 마다 눈물 어린’ 그런 처량하면서도 무구한 각시 같은 그런 꽃 말이다.

세월은 가차 없이 오고 간다. 그래서 우리는 자칫하면 지나온 시간의 흔적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도 세월을 통째로 보지는 못한다. 그러나 대부분 그 세월을 마음으로든 눈으로든 보긴 본다. 혜화는 그래서 엣 설움을 성곽에 앉혀 놓고 사람들을 영접하는 듯하다.

우리는 혜화문 성곽에서 숙정문으로 오르는 계단을 밟으며 세월을 눈으로 본다. 날 세운 바람이 그래도 덜 차가운 것은 누군가가 마음으로 본 세월 바람이 모두에게 훈훈하게 전달됐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 옛날 성곽을 사이에 두고 ‘사랑 노래’ 부르며 훈훈하게 걷던 연인들의 봄을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이날 태강님은 오름길을 힘들어 하는 문천님의 손을 잡아 주셨는데<사진참조> 아마도 그런 마음도 들어 있었을 법하다.

   
 

모두가 첫걸음을 떼면 마지막 걸음이 다가오리란 걸 안다. 사는 것이 그렇듯 우리의 걸음도 그러하다. 서울의 중앙과 북쪽이 한 눈에 들어오니 종착지가 어디인지야 불 보듯 뻔히 알지만 중간에 무슨 변수가 생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다. 이리저리 뒹굴리다가 종국엔 그 소용돌이도 잦아들 것이며 우리는 그리 살면서 시간의 편린 마디마디에 새겨진 기억들을 모듬어 각자의 역사를 만들 것이다.

이 동네는 한때 시인 조병화, 소설가 한무숙, 화가 장욱진, 이대원, 국립박물관장을 역임한 최순우 선생(이날 최선생의 가옥을 방문했으나 문이 잠겨져 있어 쓸쓸히 발길을 돌렸다) 등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흙발을 묻히며 애환을 녹여내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소설가 협회 총무를 하신, 필자가 존애해 마지않는 김정례 선생도 이곳에 사셨더랬다. 그 집을 찾아가 본지도 벌써 25년은 돼가는 것 같으니 참으로 무정하다, 세월이여…. 이곳을 돌아 대학로로 가면 연극한다고 뛰어다니다 마침내는 대성한 박영규(탤런트) 선배며, 이진수 선생, 장두이 선배, 골초 김상수(연출가) 같은 연극쟁이들과 문예극장, 한국문인협회 사무실, 소설가 박석수 선배가 있던 자유문학사, 소설가 하재봉이 있던 문예총, 시인 장석남이 근무하던 문예지 사무실 같은 곳에서 다리쉼도 할 수 있었다. 이곳은 나에게도 목욕탕 같은 것이기도 했다.

혜화동 성곽은 시간을 매듭짓고 잘라내는 추상 같은 것이 아니라 환원(環圓)적 질서로 과거와 미래를 씨줄과 날줄로 묶어 준다. 성곽은 그래서 모든 사람과 사물을 받아들이는 도리를 갖춘 마음을 가지고 우리를 감싼다. 성곽의 향내 나는 역사는 과거 속으로 가물가물해지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 흔적으로 다시 살아 봄(春)으로 오른다. 그리하여 그 봄 향내는 우리 곁에 영원히 있을 것이라고 위로해 준다.

그래서 시인 안경숙(필호 영소) 선생은 이렇게 노래한다.

입춘도 지냈는데 어디쯤 오고 있을까? 나의 봄은/

춘삼월 고대하는 내 맘 깊이/

대보름 둥근 달이 어쩌라고 들어와/

길고 긴 그리움을 풀어 헤친다/

   
▲ 영소 선샐의 시를 보면 그녀를 자신의 얼굴처럼 18세 소녀로 착각하게 만든다.

안 시인에게 입춘은 지난 밤 운우의 정을 뒤로 하고 훌쩍 떠나는 매정한 연인처럼 그렇게 가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봄으로 이어지는 환원적 오브제에 다름 아니다. 마냥 자리만 바꿀 뿐이니 아쉬워 땅을 칠 필요가 없다. “대보름 둥근달이 마음으로 (쑤욱) 밀고 들어왔으니” “길고 긴 그리움을 (삼단처럼) 풀어헤쳐” 원암침에 살짝 내려놓기만 하면 족하다.

안 시인에게 겨울과 봄은 유기적 순환관계다. 고독과 외로움은 처음도 끝도 없으며 마지막도 시작도 없다. 그리움은 그래서 간단없이 이어져가며 사시사철 현재성을 지니고 있다.

안 시인의 시적 서정과 상상력은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만든다. “대보름 둥근 달이 어쩌라고 들어와”에서 “어쩌라고”같은 시어는 원망과 바람(願)을 은유적 재치로 묘사하고 있다. 그녀는 중모리 장단으로 메치고 중중모리로 제치며 자진모리로 열어젖히고 뛰쳐나가다 마침내는 휘모리장단으로 급하게 몰아쳤다간 진양조로 늘어놓기도 하는데 그 기교가 가히 서정주 뺨친다.

이 시 속 화자는 시인 자신이다. 사람들은 이 시를 누구를 향한 사랑 고백시일지도 모른다고 웅얼거릴 수도 있는 이유다.

   
▲ 우리는 그저 걷는다. 거기에 행복이 있다고 믿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날 테제는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을 보세요’였다(노년의 성찰, 간결한 삶이 아름답다》, 19쪽 참조). “행복은 자신의 주관적인 만족감인데 이것은 욕심 없는 무심한 삶에서 얻어질 수 있다”며 문천 선생께서 낭독해 주셨는데 맑고 시원한 목소리에 아무도 졸지 못했다. (사진=은봉 최병학/ 글 =만청 주장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