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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이대로 좋은가

만청 주장환 2017. 3. 8. 06:27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이대로 좋은가

허정회 논설위원  |  hjh@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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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06  12:06:22  |  조회수 :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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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억울할 때가 많다. 그게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이익을 받을 경우에는 더 하다. 일례로 정년이 돼 직장을 그만 두어야 하는 경우다. 아직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할 능력이 있고 건강한 데 단지 나이가 찼다는 이유로 직장을 떠나야 한다.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는 만 65세가 되면 법적으로 노인이 된다. 하루아침에 신분에 변화가 생기면서 수많은 혜택이 주어진다. 지하철, 기차, 고궁, 박물관, 공원과 같은 공공시설을 무료 또는 할인 받고 이용할 수 있다. 노인기초연금 수령 대상이 되기도 한다.


지난 2월 노인이 됐다. 아직 현직에 종사하고 있고, 마라톤을 완주할 정도의 체력이 있어 노인이라는 게 전혀 실감이 안 난다. 한데 매일 출퇴근 하면서 ‘어르신 교통카드’로 지하철을 이용할 때 노인이 됐음을 절감하곤 한다. 갑자기 월 10만 원 상당의 ‘교통연금’을 받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제는 동네마다 있는 경로당과 함께 전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제도다. 우리처럼 노인빈곤율이 50%나 되는 나라에서는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많다. 이로 인한 사회적 순기능으로는 택배사업과 같은 일자리 창출, 문화‧취미 활동으로 인한 건강증진 효과, 산업화와 민주화에 기여한 세대에 대한 국가차원의 배려를 들기도 한다.


대저 세상만사에는 명암이 있는 법이다. 내가 이익 보면 손해 보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제도 그런 경우다. 이상과 같은 순기능도 있겠지만 역기능 또한 만만치 않다. 최근 노인 인구 급증으로 지하철 운영회사 적자폭이 커지면서 세대간‧지역간 갈등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 작년 전국 주요 도시철도회사 7곳의 무임승차율은 17%였다. 이로 인한 운영 손실이 5000억에 달한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급기야 서울메트로를 비롯한 도시철도 16곳은 올해 정부지원 법제화를 요구하는 헌법 소원을 내겠다고 벼른다.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제는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 지하철이 있는 대도시 거주 노인은 혜택을 받는 반면 지하철이 없는 지방도시 노인은 상대적으로 손해다. 그렇다고 버스 무임승차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교통비를 보조해 주지도 않는다. 지방 도시는 교통편도 부족하고 이동 비용이 높기에 오히려 지방 거주 노인에게 혜택을 주는 게 옳다.


복지적 측면에서 볼 때는 연령이 아니라 소득을 기준으로 혜택을 주는 게 타당하다. 운임을 지불하고 지하철을 탈 능력이 있는 중산층 이상의 노인보다는 저소득층 젊은이들에게 교통비를 보조해 주는 게 마땅하다. 또 무임승차라고는 하지만 누군가는 그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지하철 요금 상승분에는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분이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다.


최근 대한노인회를 중심으로 노인연령을 현행 65세에서 70세로 상향 조정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그러나 이런 급작스러운 정책 변경은 반발만 불러올 뿐이다. 한번 준 복지를 뺏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점진적인 제도 변경을 생각해보자. 먼저 출퇴근 시간대만이라도 노인승차를 제한하자. 노인이면 누구에게나 주지 말고 일정 소득 이하 노인에게만 혜택을 주면 어떨까. 일정 요율을 할인해 주거나 승차 횟수를 제한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지하철 무임승차제는 우리나라 노인인구가 4%대였을 때 시행한 제도다. 지금은 노인인구가 14%대이고, 20년 후에는 30%대가 될 것이다. ‘100세 시대’를 맞아 좀 더 세밀한 노인복지정책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연금, 정년, 지하철 무임승차제와 같은 노인복지 관련 제도는 연령기준을 달리해 적용하는 거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나는 아닐지라도 누군가는 내 대신 부담하게 된다. 장차 젊은이들 어깨에 지어질 부담을 우리 비교적 여유 있는 노인들이 나눠지게 되는 현명한 정책 입안을 당국에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