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그 길을 아는가?” “길이란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닐세. 저 강 언덕에 있는 것을” “이 강은 바로 저와 우리와의 경계로서 언덕이 아니면 곧 물이지. 무릇 세상 사람의 윤리와 만물의 법칙은 마치 이 물이 언덕과 서로 만나는 중간과 같은 것이네. 길이란 다른 데서 찾을게 아니라. 그 사이에 있다네.” <연암 박지원 도강록>
사람들의 꿈은 종잡을 수 없다. 언젠가는 바람이 되어 통영이니 거제니 해금강의 바람이 되고 싶다고 하다가 또 언젠가는 사람들의 갈 곳을 디디게 해주는 디딤길이 되고 싶다고 하기도 한다. 어찌됐던 그렇게 종잡을 수 없이 하늘에도 매이지 않고 땅에도 매이지 않는 구름처럼 자유스럽고 변화무쌍한 게 마음이란 놈이어서 다행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마음이 한 가지에 갇혀 있으면 답답해 경계의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 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 | ♦거리의 뽑기, 옛 추억이 새록새록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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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길을 찾는 여정은 난해하다. 강도 언덕도 아닌 그 사이에 길이 있다는 연암의 사유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누군가는 “알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는, 잡았다 생각하면 홀연 날아가 버리는 나비와 같다”고 했다. 장자의 사유와는 또 다른 도가도비가도(道可道 非常道)의 경지다.
자유행복학교 특별여행단을 태운 차는 병아리 색이다. 이 색은 천진난만함을 상징한다. 이것과 저것의 경계가 무엇인지 모르는 세계, 백지의 마음으로 제 멋대로 그림을 그리는 그런 세계인 것이다. 우리 일행은 모두 다 마음을 백지처럼 비워 놓고 통영의 바다와 거제의 이순신, 김해의 김수로왕을 찾아갔다.
한반도 남쪽은 아직도 봄이었다. 여름이 미처 덜 간 듯 솜사탕처럼 달고 포근했다. 통영은 이탈리아 나폴리를 연상시킨다 해서 한국의 나폴리라 부른다. 그래서 그런지 나폴리 모텔이 남녀상열지사들에게 최고의 명당이라고 히히덕 댄다. 통영 중앙시장은 영소선생님(이하 님으로 통일)의 한반도 남부 전략적 요충지다. 이곳에는 영소님의 시누이께서 도미, 숭어, 민어, 굴, 전복, 문어, 광어, 넙치, 오징어 등 갖가지 해산물 삼도수군통제사를 맡으시고 계신다. 덕분에 이날 점심은 거의 공짜로 루이 14세 못지않게 먹었다.
|  | | ♦수군통제영, 세병관. 설왕설래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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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후 인근에 있는 수군통제영을 찾았다. 앞바다가 지금은 빌딩이나 간판 등에 가려서 훤히 보이지는 않으나 일심(一心)으로 적들을 파(破)할만한 자리임은 분명해 보였다. 사람들이 웃고 떠들었다. 쉬잇~ ‘물령망동 정중여산(勿令妄動 靜重如山/가벼이 움직이지 말고 산처럼 무겁게 행동하라)’이라는 이순신의 명령이 들리는 듯 하다.
세병관이 군기 잡는 곳이라는 등 설왕설래(키스 아님)했으나 ‘하늘의 은하수를 가져다 피 묻은 병장기를 닦아낸다’라는 뜻을 가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동피랑과 서피랑은 멀리서 구경하는 것으로 극기복례하고 판옥선과 거북선은 공영화님의 사설을 곁들어 눈앞에서 바라봤다. 모두들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굳이 설명하는 사람만 입이 마를 뿐이었다.
모름지기 여행은 걷기가 피곤하거나 배가 부르면 차를 차고 눈으로 감상하는게 요령 중의 하나다. 차를 타고 통영의 해안도로를 따라 가니 풍광명미(風光明媚)가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을진 한산섬에 갈매기 날으니/ 삼백리 한려수도 그림 같구나/ 굽이굽이 바닷길에 배가 오는데/ 님 맞은 섬색시의 풋가슴 속은/ 빨갛게 빨갛게 동백꽃처럼 타오르네/ 바닷가에 타오른다네”하는 이미자의 노랫말을 가슴에 품으며 조감(鳥瞰)하는 맛은 꽤 짭잘했다.
|  | | ♦김해박물관 가는 길.수로왕비능에서 가로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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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해금강에서 아직도 입술이 붉은 동백나무 한그루를 만났다. 누군가는 동백꽃잎에 새겨진 사연이 유난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11월 하순의 동백이라니. 그게 지조인가 깊을 정도로 매혹적이다. 이 지역은 땅의 길 보다 물의 길이 더 발달했다고 했다. 크고 작은 섬들이 이리저리 둥둥 떠 있고 낙조는 바다 속에서 물감처럼 퍼지고 있었다. 옥포(이순신 장군이 적 30여척을 가둬놓고 박살냈던 곳이다)를 지나 가덕도로 들어서자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멀리 옥포 대우 대우조선소의 거대한 크레인과 배들의 불빛이며 포구의 네온사인 그리고 다리가 오색별들로 일렁였다.
|  | | ♦11월의 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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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가대교는 부산 강서구 가덕도와 경남도 거제시 장목면을 잇는 8.2km의 다리다. 지난 2010년 개통된 국내 최초의 침매터널(Immersed Tunnel)로 해상의 사장교와 해저의 침매터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침매터널 은 육상에서 제작한 각 구조물을 가라앉혀 물속에서 연결시켜 나가는 최신 토목공법으로 만드는 터널로 해저 터널공사에 주로 활용된다고 공영화님께서 해설해 주셨다. 모두들 관광가이드로 직업을 바꾸시라고 입을 모은다.
|  | | ♦공영화 부부의 춤사위, 두 분다 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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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탐험(?) 끝에 우리는 부들부들 떨리는 부들팬션을 찾아 여장을 풀었다. 이미 선점하신 공영화님 사모님이 떡국이며 호박죽 그리고 집에서 직접 재배하신 배추와 무로 만든 잔치상을 차려 놓으셨다. 백천님의 가야사에 대한 간단명료한 강의가 있었고 여흥이 시작됐다. 양천님, 행복님, 공영화님- 공영화 사모님, 미파님의 화려한 댄스가 許하여졌고 메들리가 12시까지 이어졌다.
다음날 아침 가거대교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산과 들, 저수지를 가로지르는 새벽 산책을 마친 후 김해 김수로왕을 찾아 갔다. 가야의 거리에서 수로왕릉을 탐방하고 대성동 고분과 박물관을 구경했다. 대성동 고분은 인봉님이 발굴 당시 직접 내려와 참관하신 곳으로 감회가 깊으신 듯 했다. 수로왕비를 거쳐 국립김해박물관도 찾았다. 아직 가을날의 양광이 국향을 기름지게 피워 올리는 이곳은 조경이 훌륭할 뿐 아니라 디자인이 뛰어난 멋진 건축물이었다.
|  | | ♦해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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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괘(乾卦)가 이괘(離卦)를 만나면 화극금(火剋金)이 되어 쇠할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 반대로 불속에서 쇠가 단련되어 더욱 강해진다고 했다. 우리 자행교 사람들은 서울에 내리는 순간, 모두 더욱 강한 친밀감으로 단단해진 것 같았다. 인은 사람의 마음이오, 의는 사람의 길이라고 했다. 그 길을 버리고 그 길을 가지 않으며 그 마음을 놓아버리고도 찾을 줄 모르니 애처롭다고 성호 이익은 말했다.
우리의 여행은 이곳저곳 모든 경계를 넘어 그 밖에서 자유로이 세상을 내려다보는 경지가 아니겠는가? 우리 자행교 사람들이 가는 그 길이 바로 중심길이며 우리 모두가 소중하고 소중한 분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여행이었다.
*사족/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태강 표홍식 님 어머님의 부고가 들어 왔다. 하느님 곁으로 가신 것이어서 영생 하시리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