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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형을 기리며

만청 주장환 2017. 6. 8. 13:54

This 형을 기리며

허정회 논설위원  |  hjh@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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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07  08:24:52  |  조회수 :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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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나는 형과 잠시 떨어져 있을 뿐, 언제나 곁에 함께 있다는 느낌으로 산다. 생전에 형이 말했다. “세상에는 살아도 죽은 듯 한 사람이 있고, 죽어도 산 듯 한 사람이 있다”고. 바로 죽어도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 별명이 ‘This’인 강신영(姜信榮) 형이다. 이 별명은 형이 무슨 말이든 할 때 ‘This is…'로 시작해서 붙여졌다.

간만에 형과 깊은 대화를 나눴다. 형이 남긴 두 권의 산시집(山詩集) ≪ 왜 산에 가야만 하는가≫와 ≪산에 사는 그대≫를 통해서다. 그 안에는 형 삶의 한 축이었던 산(山)사랑이 모두 녹아 있다. 글은 그 사람의 거울이다. 10주기를 맞아 형이 남긴 글을 통해 형이 추구했던 가치와 철학의 편린을 함께 나누고 싶다.

“재수하고 대학에 들어갔다/ 도서관에 처박혀있는 날보다/ 산으로 향하는 날이 더 많았다/ 어느 날 설악산 죽음의 계곡 눈사태로/ 한 고비를 넘었다/ 하마터면 인광 형보다 먼저 갈 뻔했다/ 선후배 산꾼들이 축하의 술잔을 건넸을 때/ 산이 무서워서 산을 멀리했다/ 도서관에서 토끼눈으로 밤새면서/ 버러지 연구 논문 백여 편에/ 중증 아픔 하나 얻었다/ 또 한 고비 넘었다/ 어느 날 엉터리 시쟁이 되어/ 엉터리 시집 한 권을 묶었다/ 아내의 부끄러운 웃음 뒤로/ 다시 산이 가깝게 보였다/ 그러나/ 산을 다시 올라가지 못했다/ 헛살았다 헛살았다/ 나이 예순.” <헛살았다 헛살았다>라는 글이다.

좀 길지만 그대로 인용한 건 형의 삶이 다 그려져 있는 자서전(自敍傳) 같은 시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딱 50년 전, 1967년 2월, 형은 대한민국 에베레스트 등정 동계 설악산 훈련대 일원으로 참가했다. 훈련 중 눈사태를 맞았지만 형은 구사일생으로 생존했고, 당시 함께 했던 10명의 동지와는 생을 달리했다. 그 후유증으로 산을 멀리하게 됐다. 학문의 길에 매진하다 몸을 상했다. 다시 산과 화해하고 산을 가까이 하려 했지만 이미 몸이 말을 안 들었다. 그래서 형은 헛살았다고 자괴(自塊)하고 있지만 범인(凡人)에게는 ‘반어법(反語法)’으로 들린다.

시 곳곳에 형수 사랑이 넘친다. 생각은 있어도 말이나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남자들이 많은데 형은 그렇지 않았다. 10주기를 맞아 형수가 직접 나서 추모문집 만드는 걸 보면서 형이 부러웠다.

“집에서 쉬는 날만큼은 아내보다 먼저 일어나서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을 들으며 아침밥을 지어놓아야겠다. 내가 아침밥상을 차려놓기 전까지 단잠 자는 아내를 깨우지 말아야겠다. 청소도 내 몫이다. 그러나 빨래를 빠는 일은 아내 몫이다.”<아침밥> 중에서.

“겨울비 내리던 어젯밤/ 북창동 뒷골목 버드나무집에서/ 불땀 나게 마신 술이 아직 덜 깨어났지/ 피곤한 아내는 두부콩나물 국밥을 끓이지/ 아내 이마 위에 입맞춤하고/ 여보 너무 미안해/ 도둑살쾡이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며/ 더운 국밥에 고춧가루 한 숟가락 풀어 훌훌 마시지” <어느 술꾼의 변명> 중에서.

“때로는 아내와 함께 한 권의 시집을 읽다가/ 밤이 깊어오면 고단한 별들에게/ 잠시 쉬어가도록 이부자리를 내어주면서/ 때로는 아내에게 조금만 사랑해서 미안하다고/ 속삭일 줄 아는 사람이 진짜 산꾼이다” <진짜 산꾼에 대하여> 중에서.

형은 무엇보다 신의(信義)를 중시했다. 의리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배신과 불신으로 가득 찬 요즘 세태에 좋은 가르침이다. 시 <백운대>에서 그 한 면을 볼 수 있다.

“내 스스로 백운대를 찾지 않았던 것은/ 삼십 년 전에 하늘같은 선배께서/ 거기에 올라서면 도떼기시장이라고 말했고/ 꽃비가 내리고 함박눈꽃이 피더라도/ 진짜 산꾼의 발자국을 찾기 힘들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중략) /내가 죽는 날까지 백운대를 찾지 않을 것은/ 백운산장 주인의 끈질긴 꼬드김보다/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자존심보다/ 북망산 꽃동네에 살고 있는/ 하늘같은 선배의 약속을 끝까지 지켜야하기 때문이다.”

<비박>에서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짧지만 강한 어조로 일갈(一喝)한다. 불의가 팽배한 우리 사회에 대한 경종(警鐘)이다.

“떳떳치 못한 세상에서 옳게 사는 것/ 그것은 바로/ 이 세상 썩은 부위는 서슬을 세운 칼끝으로/ 도려내어야만 확실히 치유된다는 것을.”

형은 베풀고 나누는 일에도 앞장섰다. 무슨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후배들 불러 술 한 잔 하면서 살아가는 얘기 하는 걸 즐겼다. 후배들 ‘산생일(서울대 농대 산악회 회원이 되려면 암벽 등반 20회, 동계원정 및 장기간 산행을 포함한 원정등반 4회를 충족한 경우)’이면 등산화 한 켤레씩을 꼭 선물했다.

<산딸나무>를 보자.

“베풂을 남모르게 나누어주면/ 나누어줄수록 그만큼 아름답고/ 베풂을 받거나 받아야 할 사람들도/ 그만큼 다시 돌려주어야 할 일임도 배웁니다”

또 <비비추>에서는 나눔에 대한 철학을 엿볼 수 있다.

“그대를 처음 만나게 된 날부터/ 이 세상에서 사랑한다는 일은/ 먼저 받는 것보다 먼저 주는 것임을 배우고/ 주면 줄수록 그만큼 넉넉해지는 것임도 배웁니다/ 그것은 이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어야 할/ 가장 깊은 뜻과 믿음입니다”

형은 아이들을 무척 좋아했다. 상록캠프 때면 짬을 내 캠프 시종을 지켜봤다. 아이들과 함께 놀 때는 ‘천진무구(天眞無垢)’ 그 자체였다.

“태화산 임도 입구에서/ 헤어짐이 아쉬운 상록캠프 아이들을 배웅한다/ 해가 바뀌고 달맞이꽃이 다시 피면/ 상록캠프에 다시 만나지는 날을 기약하며/ 이 세상을 어른들 뜻만큼 사는 것보다/ 이 세상을 아이들 뜻대로 살아가길 바라며.” <태화산 상록캠프> 중에서.

“배우리라 이 캠프에서/ 희망을 희망이라고 말하며/ 빛나는 미래를 설계하는 법을 다시 배우리라/ 자꾸만 생각나는 도봉산기슭/ 무수골 상록캠프.” <무수골 상록캠프> 중에서.

“여러분은 아름다운 자연과 금빛 추억과 소박한 꿈을/ 역사 깊은 이 캠프에서 익히고 배우리라/ 뻐꾹 뻐꾹 뻐꾸기 울음에 저무는 상록캠프.” <신나는 상록캠프> 중에서.

리더의 길에 대해서도 가르쳐 주었다. 리더는 섬기는 사람이라고. 시쳇말로 ‘서번트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다.

“새내기들과 폭염폭군과 능선 길을 걷다가 샘터를 만나면/ 일년 선배보다 먼저 새내기들에게 샘물 한 바가지씩 퍼주고/ 샛별보다 먼저 깨어나 김밥과 미역냉국을 차려놓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새내기들이 늦잠을 자더라도/ 새내기들을 끝까지 깨우지 않는 사람이 진짜 산꾼이다” <진짜 산꾼에 대하여> 중에서.

형은 산을 사랑한 산사람이었다. 자연과 함께한 자연인이었다. 자기 삶을 산 자유인이었다.

“허구한 날 산에 쏘다니면서/ 산꾼들이 배워야 할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삶의 탈출과 도피가 아니라/ 삶의 지혜와 존중과 끈질긴 생명력일 거다” <토산모 뒤풀이> 중에서.

“우리는 목숨까지도 담보로 하면서/ 때로는 배신당하기도 하면서/ 저 무거운 중력을 뚫고 우뚝 서 있는 산을/ 왜 자꾸만 찾는가” <왜 자꾸만 산을 찾는가> 중에서.

“산사람은 삶의 지혜를 깨달으며/ 산사람은 삶의 의미를 생각한다/ 삶의 끈질긴 생명력을/ 산의 위대한 포용력과 견주어본다” <산사람 2> 중에서.

형의 이런 형수 사랑, 신의, 정의로운 사회, 베풂과 나눔, 아이 사랑, 리더의 길은 산사람, 자연인, 자유인을 넘어 산악회 사랑으로 마무리 한다. 서울대농대산악회 깃발 아래 하나로 모일 것을 염원한다.

“헤아릴 수 없는 후배들의 풋풋한 힘과/ 헤아릴 수 있는 선배들의 묵직한 힘이/ 함께 뭉쳐/ 한꺼번에 절망의 절벽을 무너뜨려/ 희망의 들판을 이룰 것이다/ 저 펄럭이는 서울농대산악회 깃발 밑에서.” <관악캠퍼스 75동 小考> 중에서.

“빛나는 서울대 농과대학 산악회가/ 성산포 앞 바다에 떠오른 불덩이보다 더욱/ 빛나도록 합창합시다.” <새아침에 2> 중에서.

This 형!

오래간만에 불러봅니다. 세상만사 훌훌 털고 편안하게 지내시죠? 참, 알고 계시지요? 형이 그렇게 오르고 싶어 했던 에베레스트 등정 소식 말입니다. 벌써 5년 전인 2012년 5월, 자랑스러운 우리 후배 영훈이가 올라갔습니다. 형이 박장대소했을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리고 지난 2월, 경철 형이 형한테 간다고 떠났는데 만나보셨나요? 올 땐 순서가 있어도 갈 땐 없다고 하잖아요? 우리도 형이 가르쳐준 길 따라 조금 더 살다가 머지않아 가겠습니다.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